인공지능 전성시대다. 자율주행, 음성지능, 의료 인공지능, 로보틱스 분야에서 많은 인공지능 기반 기술과 서비스가 쏟아지고 있다. 또한 초거대 인공지능 모델의 등장, 학습 능력 향상 등의 기술적 변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눈에 띄는 양적 성장과 달리 기술적 진화는 여전히 더디다는 측면도 존재한다. 서울대학교 AI 연구원(이하 AIIS) 장병탁 교수는 현실의 인공지능은 여전히 반쪽짜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장 교수는 국내 머신러닝 분야 최고전문가로, 30년 전부터 AI의 학습모델을 연구해 왔다. AI 연구원 초대 원장을 역임하고 있는 장 교수는 현재 학습 AI를 넘어 AI가 데이터를 스스로 생성하는 단계를 연구하고 있다.

장 교수는 머신러닝을 예로 들어 현재의 인공지능 수준을 설명했다. 머신러닝은 입력된 데이터를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 기능을 가졌지만 결국 인간에게서 데이터를 입력받아야만 학습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현재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기는 언제쯤일까. 올해가 될 수도 있고 10년 뒤가 될 수도 있다. 장 교수는 "(인공지능의 특이점은) 경우에 따라서는 바로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를 잘 정의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지금 시대에서 인공지능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켜나갈 것인가에 대한 답이 명확해진다면 인공지능은 생각보다 빨리 진화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장병탁 교수와 나눈 ‘현재의 인공지능, 앞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담는다.

서울대학교 AI 연구원 원장 장병탁 교수 / IT조선 DB
서울대학교 AI 연구원 원장 장병탁 교수 / IT조선 DB
―인공지능 기술도 자율주행처럼 단계별로 정의된다고 들었습니다. 인공지능 발전 단계에 대해서, 그리고 현재의 수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개인적으로 나눈 단계는 6단계인데요. 1단계는 엑스퍼트 시스템, 2단계는 딥러닝 시스템, 3단계는 셀프-티칭 시스템, 4단계는 셀프-리플렉티브 시스템, 5단계는 휴먼레벨 AI, 6단계는 슈퍼휴먼 AI 입니다. 사실 최종 단계까지는 진짜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수준이라고 봐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현재는 2단계 정도로 봐야 하는데요. 1단계 엑스퍼트 시스템은 규칙 기반 AI이고, 2단계 딥러닝 시스템은 학습 AI입니다.

규칙 기반은 사람의 지식을 기계에 집어넣는 방식으로, ‘특정 데이터 값이 A 이면 도출값은 B이다’와 같은 If and Then 의 구조라고 보면 됩니다. 1980년대 산업화 단계에서 한번 크게 성공을 이뤘죠. 분명 빠르게 잘하지만 사람을 능가할 수 있는 형태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기계에 주입되는 지식은 모두 사람이 생성시켜줘야 하기 때문이죠.

2단계는 기계가 스스로 지식을 만들어내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머신러닝이니, 딥러닝이라 부르는 기술입니다. 사람은 기계가 학습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제공해 주면 됩니다. 요즘에는 컴퓨팅 파워도 좋아지고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수집되고 있기 때문에 머신러닝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AI의 예가 있다면요.

"오픈AI가 최근 공개한 챗GPT(Chat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죠. 챗GPT는 현재로써는 사람의 대화에 가장 가까운 AI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는 계속해서 잘못된 답변을 바로 잡으면서 최적의 대화 방법을 학습하는 강화학습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맥락을 이해한다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지금 챗봇을 보면 대화를 계속 기억하지 못하는데, 챗GPT는 어느정도 대화를 기억하는 ‘작업 기억’이 가능하죠. 그래서 대화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판단하고 그에 맞게 답변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지금의 머신러닝 다음 단계를 무엇인가요.

"지금 머신러닝은 사람이 데이터만 주면 AI가 프로그램을 짜서 스스로 학습하는 방식이잖아요. 충분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여전히 데이터는 사람이 제공해줘야 해요. 그래서 다음의 진화는 AI가 스스로 데이터까지 만드는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 제가 연구하고 있는 부분인데, 저는 이걸 머신러닝이 아니라 러닝머신이라고 부릅니다.

결국은 로봇의 형태가 되는 건데요. 그러니까 센서, 엑츄에이터 등으로 구성된 로봇이 필요한 데이터를 직접 수집해서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는 겁니다. 가령 앞에 있는 테이블에 대한 특정 결과물을 얻어야 하는 경우라면 로봇이 테이블을 보고, 만지고, 들어본 다음 색상, 재질, 무게 등의 데이터를 수집해 목표하는 결과값을 얻어내고 다음 행동을 하는 것이죠. 이는 인지과학 측면에서 봤을 때 분명히 지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모습을 닮아 있습니다.

요즘은 센서 기술도 많이 발전했고, 사물인터넷(IoT)를 통해 장소 구분없이 데이터를 수집하고 엣지 컴퓨팅이나 클라우드를 통해 실시간으로 AI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죠. 그래서 러닝머신의 시대가 생각보다 일찍 현실화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러닝머신으로 발전되면 스스로 사고하는 AI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네요.

"스스로 사고한다는 게 뭐냐면 목표 함수를 스스로 만든다는 거에요. 현재는 목표 함수를 사람이 지정해 줍니다. 자율주행을 예로 들면 목적지에 빨리, 정확하고 안전하게 도착하는 목표 함수를 사람이 지정해 준 것입니다.

저는 이 다음 단계, 즉 목표 함수를 AI 스스로 결정하고, 수정하기도 하는 훨씬 더 자율적인 형태가 되면 ‘스스로 사고하는 AI’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령 "테이블 위를 정리해줘"라는 목표를 주면 AI가 어떤 부분을 먼저 치워야 하고, 치우지 말아야 할 부분을 결정하는 등의 사고한 후 행동하는 것이죠."

서울대학교 AI 연구원 원장 장병탁 교수 / IT조선 DB
서울대학교 AI 연구원 원장 장병탁 교수 / IT조선 DB
―AI가 여러 측면에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현실적인 측면에서 한계성이 좀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지금의 AI에게 필요한 기본 전제는 ‘학습한 데이터가 미래에도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다’에요. 가령 반도체 공장에서 불량이 발생했다면 이때 기록된 온도, 압력, 습도 등의 데이터가 있을 건데요. 앞으로도 만약 비슷한 데이터 값이 나오면 불량이 곧 발생한다는 가정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그게 안 맞아요. 현실 세계는 다양한 상황들이 발생합니다. 단순히 사람의 대화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맥락, 제스쳐, 표정, 분위기 등 다양한 요소들이 반영되기 때문에 제조업처럼 데이터 분석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죠. 더욱이 현재까지의 AI는 실체는 없고 가상세계에서 존재하는 개념이 큰데요. 앞서 말한대로 로봇으로 형태가 진화하면 수많은 변수 속에 놓이게 될텐데, 아직은 그러한 현실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그럼 현재 상황, 즉 AI 한계점에 놓인 시점에서는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화 단계로 가기 쉽지 않겠네요.

"현재 AI는 문자 보내는 수준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챗GPT나 자율주행처럼 현실 세계에서 발생하고 대응할 수 있는 AI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희 AIIS에서도 진행한 프로젝트를 보면 AI가 드라마를 보고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지였는데요. 바꿔 말하면 언어뿐 아니라 시각으로 배우의 행동, 상황을 보면서 드라마의 흐름을 이해한다는 것인데요. 아직 미흡하지만 맥락을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했습니다.

대기업들도 AI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네이버, 카카오는 물론이고 삼성, LG, CJ, 한화 등의 기업이 그룹 차원에서 AI 연구원이나 센터를 구축해 전 계열사에 AI가 적용되는 인프라 환경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AI의 진화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융합과 다양한 적용 사례, 인프라 구축 등이 활발히 진행된다면 생각보다 일찍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교수님께서 원장으로 계신 AIIS는 어떤 곳이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AIIS는 ‘모두를 위한 AI’라는 슬로건으로, 다양한 학문 분야와 AI, 산업 분야와 AI, 인간과 AI를 융합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AI를 위한 연구 및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실 AI는 물리학, 천문학, 수학, 보건학, 인문학 등 어떤 학문과도 융합될 수 있는 기술이거든요. 가령 국문과 교수님이 AI 기술을 활용해 조선시대 역사의 정확도를 예측할 수도 있습니다. AIIS에서는 인문·예술과 AI, 바이오와 AI, 의료와 AI, 미디어와 AI, 에너지와 AI, 금융과 AI 등 다양한 학문과 접목한 다학제적 AI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산학협력인데요. AIIS는 산학과제를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두는 기존의 산학협력이 아니라 멤버십을 운영해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고 ‘AIIS 리트릿(Retreat)’은 행사를 통해 멤버 기업 연구원들과 집중적으로 최신 AI 연구를 교류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현재 LG AI연구원, 네이버, 메가존클라우드, 카카오엔터프라이즈, GC녹십자, CJ가 멤버 기업으로, ‘AIIS 리트릿’ 행사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조상록 기자 jsrok@chosunbiz.com